담배반찬

변수, 변화, 향상심, 그리고 훌륭한 사람에 대하여

Guilert 2025. 9. 30. 20:49

 

이 주제를 이보다 잘 설명할 짤이 있을까


 
오랫동안 내 머리통을 괴롭히던 관념, 아집, 가치관 등을
하나의 방향성으로 드디어 정리해 냈고 매우 개운하다.

 

1. 인(因), 연(緣), 과(果), 업(業), 그리고 다시 인(因)

 
나는 무신론자에 가깝다. 다만 불교의 가르침 중 하나에는 굉장한 흥미가 있다.
씨앗-조건-열매-거름-또다시 씨앗이라는 순환 구조로
 
무수한 변수와 가능성의 패턴을
인, 연, 과, 업 4가지로 정리한 인과율에 관한 정리가 그것이다.
 
이 설명은 별로 맛이 없고 어려워서 2번으로 넘어가도 무방하지만
읽어 놓으면 글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세계가 만약 무한한 가능성이 병렬 연결된 구조라면?
엘리베이터를 탄 승객 4명이 누른 제각기 다른 층을 각각 한 번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물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세계는 병렬 구조가 아니다.
4명은 순서대로 각자의 층에 도달할 것이다.
 
각자의 층을 누를 경우의 수는 유한하나 무수한 변수를 품고 있다.
 
 
 
각자의 층으로 도달하기 위한 원인은
잠재적 조건인(因)을 품고 있다.
이 건물 자체에 볼일이 있다는 것이.
 
연(緣)발현 조건이다.
이 건물의 특정 층에 볼일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8층의 치과에 볼일이 있다.
누군가는 16층의 변호사 사무실에 볼일이 있다.
인이 혼자서는 과로 직접 이어지지 못하고, 반드시 연과 함께해야 과가 드러난다.
 
과(果)는 원인과 조건이 만나 드러난 결과다.
16층에 볼일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8층에 엘리베이터가 정차하는 순간을 인내해야 한다.
정차라는 조건, 시간의 흐름, 목적지라는 의도가 맞아떨어질 때 16층에 도착이라는 그 한 번의 과가 드러난다.
과는 점이고, 이어지는 점들의 패턴을 우리는 변화라고 부른다.
 
업(業)은 열매가 다시 새로운 씨앗이 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결국 승객을 모두 내려주게 된다.
엘리베이터가 다시 1층으로 돌아가 새로운 승객을 태우듯,
결과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새로운 원인이 되어 순환한다.
 
 
 
현실은 어쨌거나 병렬된 수많은 인과의 흐름 속에서 선택된 단 하나의 흐름이다.
탑승객이 각각 8층, 16층 등에 내리는 결과는 동시에 발현될 수 없다.
다만 이 흐름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거다.
 


2. 변수

 

검수하다가 다시보니 진자 부럽네

 
변수는 인과 연이다.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조건적 요소를 의미한다.
 
쉬운 예로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영화를 들 수 있는데.
주인공이 갑자기 예정된 출근 여정을 버리고 내려버리는 순간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그 변곡점 하나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데, 본 사람은 알 거다.
 
 
변수는 무섭다.
단 하나의 변수로 어제의 기연이자 선생같던 사람이
오늘의 철천지 원수가 될 수 있다.
 
그런 특성에 꽂혀서 그런지 나는
통제나 예측이 불가한 변인, 변수를 굉장히 두려워한다.
적게는 1주, 길게는 3~5년의 그림을 그리고, 그대로 진행이 되어야만 안심이 되는 성격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 인생은 변수나 특정한 변곡점 없이는
그토록 원하는 안정을 이루지 못했다.
 
 
'무슨 바람이 불어가지고 갑자기 ~'
 
그 때 부역장에게 새해인사를 하지 않았다면?
과감하게 300명 규모의 학생단체를 해산하고 나 자신을 직면하지 않았다면?
 
출근 길에 졸졸 따라오는 고양이를 어련히 잘 살겠거니 내버려 뒀다면?
난데없이 그런 비 오는 날의 꿈을 꾸지 않았다면?
 
예비군을 미루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지원하지 않았다면? 
 
이런 변수가 없었다면 정말로 시시한 아저씨가 되었을 거다.
2차 민생지원금이야 수령할 수 있었겠지만..
 
 
운명을 믿어요?라는 느낌도 결국 이 변수와 변곡점들의 장난인 거고,
성공한 사람들이 정말 순수한 의도로 종교를 믿는 것도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늘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감사하는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나의 과, 업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지,
결코 인, 연이라는 변수 없이 내 순수한 역량과 의지만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기에.
 
 
 
살아온 시간을 반추하며 든 생각인데,
무의식적으로 정체되었다고 느낄 때마다 변곡점을 찾으려는 시도를 해왔던 것 같다.
당연히 후회할만한 선택도 있었지만, 이 직관의 타율은 꽤 높았다.
 
애초에 그냥 갈겨버리는 게 아니고,
위의 설명과 같이 성격 상 수없이 많은 고민을 거치긴 하기 때문에..
 
그러니 또 다른 변곡점을 만들려는 시도나
변수를 기다리는 것을 계속 하긴 할 거다.
 
여전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명쾌하고 직관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암만 자존심을 내려놓는다 한들,
 
맥락과 기호, 가치관을 지나치게 벗어나
난데없이 안 먹던 떡볶이나 케찹같은 걸 갑자기 주워 먹을 수는 없는 거다.
 
 
 
요 몇 개월 간 가장 반성한 것인데,
이제 더 이상은 변수를 통제하려 하거나
휘둘리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거다.
 
정말 오만하게도 판이 읽힌다 싶으면
타고난 직관과 지능 따위로
내게 주어진 모든 변수를 다 통제하고
내가 원하는 이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당연히 아니었고, 애초에 역량도 부족했고,
그 때문에 방황이 길었다.
그런 공허한 열정에 이제는 정말로 지쳐버렸다.
 
마지막에 자세히 쓰겠지만,
변수에 의연할 수 있는 태도야말로
오히려 인과의 흐름을 많이 소유할 수 있고
유사하게나마 변수를 통제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정말로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하고,
역량과 한계를 이해하고,
내려놓고 변화해야 할 때다.
 
 


3. 변화

 

그냥 가라!

 
변화는 인과 연이 만나 여러 번 드러난 결과들이
시간 위에서 쌓이며 이동하는 흐름이다.

한 번의 과는 점이고, 변화는 그 점들이 만든 궤적이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아니고 실제로 그렇다.
다만 대부분은 방법을 모를 뿐이다.
 
인이 막연한 욕망이나 선언이라면, 연은 그 욕망이 현실로 굴러가게 만드는 레일이다.
레일이 없으면 바퀴는 헛돈다. 의지력으로 밀어붙이는 건 잠깐 통할 수 있지만, 오래 못 간다.
 
변화는 과들의 궤적이고, 업은 그 궤적을 밀어 한쪽으로 기울게 하는 누적 경향이다.

같은 인이라도, 깔린 연이 달라지면 나오는 과가 달라지고, 그 누적이 다시 업을 만든다.
 
이해하기 쉽게 선언적으로 말하면,
변하고자 한다면 그냥 계속해야 한다.
모든 인과를 받아들이면서
변곡점이라는 씨앗을 그냥 계속 심어야 한다.
 
 
 
 
중요한 건 규모나 거창한 계기 한 방이 아니다.
동기부여 해주세요! 만큼 애잔한 부탁이 없다.
왜냐하면 노력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된다.
 
다만 갖고 싶고 변화하고 싶다면 얘기가 다르다.
 
되든 안되든 그냥, 계속하는 놈이 무조건 이긴다.
재능이 있으면 3개월, 재능이 없으면 3년이 걸린다.
우린 대개 후자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그래도 3년을 해낸 놈이 쌓은 인과는
어떤 천부적인 재능으로도 극복할 수 없다.
 
어떻게?라는 것도 거의 의미가 없다.
매일 반복되는 작고 촘촘한 연이 훨씬 강하다.
 
 
 
멋진 몸을 갖고 싶다면
퇴근 즉시 그냥 헬스장을 가야 한다.
피아노로 멋진 곡을 연주하고 싶으면
그 곡을 그냥 계속 듣고 계속 쳐야 한다.
 
뭐 이런 게 인생 최종 목표고 이루는 즉시 죽어버릴 거라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계획하고 열심히 노력해야겠으나,
 
열심히 효율적으로 할 필요 없다.
왜? 그냥.
 
견명한 이성을 되찾고 뱃살을 없애고 싶다면
1달이라도 술을 끊는다.
 
갑자기 금주하세요? 왜요?
그냥요.
1달을 잘 끊었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또 마신다.
그리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면 또 그냥 끊는다.
 
 
이런 방법론적인 것은 기본이고, 그냥 해야 한다.
 
뭔가에 대단히 통달해 버린 사람에게 물어보자.
무엇이 당신을 그 지경까지 만들었지요?
꽤 많은 사람들의 근원은 "그냥 하다 보니.."이다.
 
거듭 얘기하지만 변화는 인+연으로 이루어진 과, 업의 흐름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치열한 "그냥"의 누적은
내 일상의 확률 분포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치우치도록 해준다.
 
실패로 멈춰서는 게 아니라, 성공이 더 자주 일어나게 만드는 것.
그러니 1~2번의 일탈로 흔들릴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단발의 성취가 아니라, 장기 분포를 당기는 힘이다.
 
그렇다고 아무 변수를 다 통제하려 들면 오히려 엉망진창이 된다.
상기한 바와 같이 세상은 내 계획보다 변수가 항상 많다.
변화는 완전한 통제가 아니라 의미 있는 편향이다.
 
내가 할 일은 우주의 모든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내 손이 닿는 몇 개의 버튼 위치를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계속해서 누르는 것이다.
 
 
건드릴 수 있는 연을 재배치해서,
같은 인이 더 자주 좋은 과로 흘러가게 만드는 것.
 
 
 
 
변화 차원에서 또 하나의 큰 반성은,
내 변화로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타인을 변하게 만들려면 3배의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난 그걸 온갖 욕을 먹어가면서라도 그냥 했다.
 
변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분해 보인다면,
결국 내가 제안하는 솔루션이 옳다고 생각했기에.
 
당장은 날 고깝게 여기거나 심하게는 저주를 하더라도
반드시 스스로 원하는 바대로 변화한다면
이상적으로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과 자신감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냥 했다.
 
요컨대, 타인과 함께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내 소중한 사람들이 감내하지 못하는 인과와 업까지 같이 짊어지려고 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공감과 헌신의 방식이기도 했으니.
 
그런데 그런 짓은 이제 그만두려고 한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전부 동원한다고 한들
스스로 인과를 소화해 내고 100% 내면화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또 하나의 변수 통제에 불과하다는 게 내 결론이다.
 
그런 수동적 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거니와
그 변화가 이루어진다 한들
 
시작부터 알고 있는 것이고, 생색을 본위로 하는 일도 아니지만
타인이 변화를 반추하는 과정에 어차피 나라는 존재는 없다.
 
무엇보다 서로 간에 끝내주게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이젠 나 자신에 직면할 때다.
 
 


 

4. 향상심

 
누군가 유의미한 변화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 있으면
꼭 물어보는 게 그 향상심의 근원이 무엇이냐? 였고
대답은 제각각이었으나,
 
결국은 또다시 펀더멘탈이다.
 
향상심이란 무엇이냐
 
변화가 무의미하지 않도록, 
변화의 결과들을 무작위로 방치하지 않고
그중 더 나은 방향, 더 적은 고통을 선택하여 미래 인과의 구조를 조정하는 주체적 의지다.
 
이제 인과를 정향으로 하나하나 돌려가며
진짜 훌륭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인 거다.
 
이 인과가 정향으로 흐른다는 것이 진짜 엄청난 거다.
어떤 변수가 와도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궁극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인데
불교에서 해탈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걸 의미하지 않나 싶다.
 
수행하는 방식, 계파마다 다르겠지만
스테레오타입적인 스님들 떠올려보면 된다.
 
고기도 안 먹고 술도 안먹고
빡세게 변수를 극단으로 차단하는 행동 같은 것들이
인, 연, 과, 업을 최대한 사고범위 내에 축소시켜서
향상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난 때려죽여도 그런 것은 못하긴 하는데
아무튼 향상심은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나훈아 - 공(空) 회식 18번인데, 부장 할아버지들이 젊은놈의 껍데기를 쓴 할배같다고 진짜 짱좋아함



5. 공(空), 그리고 훌륭한 사람

 
나는 사람들이 본인 스스로와 본인의 환경, 상황에 대해
내리는 평가나 판단을 잘 믿지 않는다.
 
 
결국은 *공이며, 모든 것은 조건적, 관계적, 잠정적이다.
*공(空) : 비어있다는 뜻
 
어떤 자아도 독립적, 절대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모든 분기는 조건 따라 드러나는 잠정적 모습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이거 다 무의미하고 허무한 겁니다라는
유치한 허무주의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변수 → 변화 → 향상심
공 속에서 인간이 허무를 넘어선 창조적 흐름을 담아내는 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가치는 인과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담아내는 그릇의 크기로 결정된다.
왜냐? 흐르는 인과가 많을수록 선택의 자유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건 스스로 반성하기 전후로 변함없는 내 핵심 가치관 중 하나다.
 

그릇이 큰 사람 [훌륭한 사람]

  • 최대한 많은 변수를 유기적으로 받아들여 자유로운 변화가 가능해지고,
  • 변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젖히며,
  • 그 속에서 향상심을 가지고 의미와 방향을 만들어낸다.


내가 습관처럼 말하는 키워드인 [훌륭한 사람]은
살면서 계속해서 소폭 재정의되어 왔지만
 
결국 그게 대체 뭔데 자꾸 말하는 건가요?
라는 질문에 내 대답은 이것이고,
 
역시 난 내 스스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공 얘기로 돌아와서,
 
 
공을 체험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고정된 자아도, 하나뿐인 정답도 없다. 조건이 바뀌면 나는 바뀐다.
 
내 고약한 습관처럼 수십 개의 가면을 쓰고 살라는 게 아니다.
또는 본질을 외면하고 허세를 겹겹이 두르라는 게 아니다.
 
정체성을 부수라는 게 아니라, 정체성을 조건들의 현재 합으로 봐야 한다.
그러면 변화는 진정한 자신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갱신이 된다.
 
 


6. 그나저나, 갑자기 웬 뜬구름 잡는 느낌의 글인가?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부끄럽고 뼈아픈 외면하고 싶은 업이 많이 쌓였다.
1년 정도 방황했고, 3개월 정도 고민을 좀 했다.
인지부조화, 자존심, 위선, 나 스스로 규정한 나의 가치 문제다.
 

방황이 길었고, 중요한 선택들을 해야 할 시기다.

이 기간의 끝의 끝까지 나는 솔직하지 못했다.

 
내 근본 가치관, 세계관부터 점검해 보았고
그걸 그대로 과감하게 블로그에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생각이 다소 맑아졌으니
 
일단은 연휴기간 동안 미뤄왔던 집정리부터 삭 좀 하고,
어쨌거나 고향에 다녀와서 맛있는 술을 마실 거다.
이걸 끝으로 당분간 또 금주를 해야지.

따라라란 따란 딴 데킬라

 
 
글을 이따금 읽어보면서 계속 스스로 재점검해 볼 것이고,
운이 좋다면 단 한 명이라도 글을 읽고 좋은 영감을 얻을 것이라 기대한다.